요한복음_23. 타인의 시선 |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그 삶은 불행하다
Update: 2025-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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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인의 시선 |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그 삶은 불행하다
· 요한.5,41~47
· 음질이 좋지 않습니다. 유튜브로 시청할 것을 권합니다. 자막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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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몇 분의 헌금으로 이 영상을 내보냅니다. 축복하며 기도하겠습니다.
· 헌금: 농협 060-02-192192 · 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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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실존은 타인의 시선에 있지 않다
· 실존의 경험이 가져다주는 참다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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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삶: 라캉과 지라르의 시선으로 본 현대인의 실존
1. 서론: 타인의 시선에 갇힌 현대인의 자화상
현대 사회는 전례 없는 연결의 시대라는 약속과 그 이면의 실존적 고립이라는 배반 위에 서 있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실시간으로 타인의 삶을 관망하고 나의 일상을 전시하지만, 이 과잉 연결의 네트워크 속에서 개인의 공허는 역설적으로 깊어만 간다. 화면 속 타인의 편집된 행복과 나의 현실을 비교하며 느끼는 박탈감, ‘좋아요’라는 숫자에 따라 요동치는 자존감은 이제 우리 시대의 보편적인 고통이 되었다.
이러한 현상의 근저에는 인간의 실존을 뒤흔드는 근원적 문제가 자리한다. 라캉의 도발적인 주장처럼, 우리의 욕망은 순수한 내면의 발현이 아니라 타인의 욕망을 모방하고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는 구조 속에 있다는 것이다. 타인의 시선을 내면화하여 삶의 준거로 삼을 때, 개인은 주체성을 상실하고 끝없는 불안의 궤도에 갇힌다. 본 에세이가 주목하는 현대인의 실존적 위기는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본고는 이 문제를 해부하기 위해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Jacques Lacan)과 문화인류학자 르네 지라르(René Girard)의 이론을 핵심적인 분석 틀로 삼고자 한다. 라캉의 ‘타자의 욕망’ 개념과 지라르의 ‘모방 이론’을 통해 인간 욕망의 구조를 파헤치고, 타인의 인정에 기생하는 삶이 어떻게 ‘실존의 죽음’으로 귀결되는지 논증할 것이다. 나아가 소셜 미디어가 이 욕망의 메커니즘을 어떻게 증폭시키는지 분석하며, 이 굴레를 넘어 진정한 실존적 자유를 향한 길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2. 인간 욕망의 본질: '타자의 욕망'과 '모방 이론'
현대인의 실존적 딜레마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동력인 인간 욕망의 근원적 구조를 해체해야 한다. 우리는 흔히 자신의 욕망이 순수하게 내면에서 우러나온다고 믿지만, 라캉과 지라르의 사상은 이러한 통념에 근본적인 균열을 일으킨다. 그들의 이론은 우리가 무엇을, 그리고 왜 욕망하는지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드러냄으로써, 타인의 시선에 갇힌 우리 자신을 성찰하게 만드는 강력한 지적 도구가 된다.
라캉의 도발적인 명제, **“인간의 욕망은 타자(他者)의 욕망이다”**는 이 논의의 핵심을 관통한다. 여기서 ‘타자’는 단순히 다른 개인이 아니라, 개인보다 앞서 존재하는 언어, 문화, 사회 규범의 총체인 **‘대타자(the big Other)’**를 의미한다. 우리의 욕망은 이 거대한 상징적 질서가 이미 가치 있다고 규정한 대상을 향하도록 구조화된다. 결국 우리는 타인의 인정을 욕망하고, 사회가 제시하는 성공의 기준을 욕망하며, 그것을 마치 자신의 고유한 욕망인 양 착각하며 살아간다. 내가 욕망하는 것은 ‘나’의 것이 아니라, 대타자가 욕망하라고 명령한 것일 뿐이다.
인간의 욕망 대부분은 순수한 자기 자신의 욕망이 아니라, 타인의 욕망을 모방한 욕망입니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 남이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느냐, 남의 시선을 욕망합니다.
르네 지라르 역시 **‘모방 이론(Mimetic Theory)’**을 통해 욕망의 관계적 본질을 해부한다. 지라르에 따르면 욕망은 주체(나)와 대상 사이에 직접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제3의 모델(매개자)을 거치는 삼각형의 구조를 띤다. 내가 선망하는 모델이 특정 대상을 욕망할 때, 나 또한 그 대상을 욕망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모델이 욕망의 길잡이인 동시에, 동일한 대상을 두고 경쟁하는 **경쟁자(rival)**가 된다는 점이다. 소스 텍스트는 지라르의 관점을 빌려 요한복음 5장 44절을 예리하게 재해석한다. “너희는 서로의 욕망을 욕망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욕망, 즉 하나님의 의지와 현실을 욕망할 수 없다.” 이는 수평적인 상호 모방과 경쟁에 갇혀, 수직적인 진실을 바라볼 능력을 상실한 인간 조건에 대한 통렬한 지적이다.
이처럼 라캉과 지라르의 분석은 우리의 욕망이 결코 자율적이거나 순수하지 않음을 폭로한다. 우리는 타인의 욕망이라는 거울을 통해서만 자신을 욕망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렇다면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이 필연적 구조는 개인의 자아와 실존에 어떤 심오하고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는가?
3. 인정 욕구의 대가: '실존의 죽음'과 거짓된 삶
외부의 인정을 추구하는 행위는 단순한 사회적 행동을 넘어, 개인의 내면을 잠식하는 심각한 실존적 문제입니다. 타인의 기준에 맞춰 자신의 삶을 재단하는 순간, 우리는 자신의 고유한 존재 가치를 스스로 포기하게 됩니다. 이 장에서는 타인의 시선이라는 불안정한 토대 위에 세워진 삶이 어떻게 개인을 내면적 파괴로 이끄는지 해부하고자 합니다.
타인의 시선에 대한 의존은 개인을 **‘빈 껍데기(a hollow shell)’**로 전락시키고, 종국에는 **‘실존의 죽음(existential death)’**으로 귀결된다. 나의 존재 이유와 가치를 타인의 변덕스러운 평가에 저당 잡힌 삶은, 숨은 쉬고 있으나 진정으로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타인의 인정이 있을 때 잠시 존재감을 느끼지만, 그 시선이 거두어지면 나의 존재 또한 함께 소멸한다. 이러한 ‘빌려온 실존’은 스스로의 가치에 뿌리내린 진정한 존재와 날카롭게 대비된다. 소스 텍스트는 출애굽기 3장 14절을 인용하며 이 문제를 심오한 형이상학적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나의 존재가 타인의 시선과 상관없을 때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게 하나님의 성질입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신적 속성은, 타인의 평가와 무관하게 자기-충족적으로 존재하는 것의 궁극적 모델을 제시한다.
만약 나라는 존재가 타인의 시선에 따라 규정하는 것이라면, 그 존재는 애초에 존재할 이유가 없는 겁니다. 실존實存이 사라진 거짓의 존재, 빈 껍데기일 뿐입니다.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는 죽은 존재입니다.
결국 타인의 시선이라는 일시적이고 변덕스러운 기반 위에 자아를 구축하려는 시도는 본질적으로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타인의 평가는 언제나 제한적이며, 나의 실존을 온전히 담아내거나 지켜주지 못한다. 그것은 마치 사막의 **‘신기루(a mirage)’**처럼 손에 잡힐 듯 보이지만 결코 도달할 수 없는 허상과 같다. 이러한 허상을 좇는 삶은 필연적으로 **‘거짓의 삶(a life of falsehood)’**이 된다. 삶의 주도권을 타인에게 내어준 채, 남이 알아주는 것에만 의존하는 삶은 나의 실제와는 무관한 거짓된 연극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 인정 욕구가 이토록 파괴적이라면, 현대 사회의 기술은 이 욕구를 어떻게 전례 없는 수준으로 증폭시키고 있는 것인가?
4. 현대적 증폭: 소셜 미디어와 인정 중독 매커니즘
소셜 미디어는 라캉과 지라르가 분석한 인간 욕망의 이론이 실시간으로 펼쳐지는 거대한 실험장이다. 이 디지털 플랫폼은 인간의 근원적인 인정 욕구를 정교하게 활용하고, 이를 전례 없는 수준으로 강화하며, 결국 우리를 보이지 않는 중독의 굴레에 가둔다. 이 공간에서 타인의 시선은 더 이상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좋아요’와 ‘팔로워’라는 구체적인 숫자로 계량화되어 개인의 행동을 지배한다. 소스 텍스트는 이 중독 매커니즘이 강력하게 작동하는 심리적 이유를 세 가지로 분석한다.
첫째, 인정은 정체성 형성의 ‘즉효 약’ 역할을 한다. 본질적으로 관계적 존재인 인간은 홀로 있을 때 실존적 불안을 느낀다. 이때 타인의 즉각적인 인정과 관심은 이 불안을 잠재우는 가장 빠르고 손쉬운 해결책처럼 보인다.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을 내면에서부터 구축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건너뛰고, 외부의 긍정적 반응을 통해 손쉽게 나를 확인하려는 유혹에 빠진다.
둘째, 디지털 플랫폼은 즉각적 보상을 통한 중독을 설계한다. 타인으로부터 ‘좋아요’나 칭찬과 같은 긍정적 반응을 얻을 때, 우리의 뇌는 도파민과 옥시토신 같은 쾌락 호르몬을 분비한다. 이러한 즉각적이고 가시적인 보상은, 눈에 보이지 않고 더디게 나타나며 해석을 요구하는 진리나 내면의 가치보다 훨씬 강력한 유인으로 작용한다. ‘위험한 절벽에서 사진을 찍는’ 극단적 행위는, 이 즉각적 보상을 얻기 위해 삶의 실제적 가치마저 내던지는 중독의 비극적 단면을 보여준다.
셋째, 이 인정 욕구는 사회적, 종교적 권력 구조와 결합하며 더욱 공고해진다. 공동체 내에서 서로 칭찬하고 권위를 인정해주는 시스템, 즉 **‘종교적 인정 욕구’**는 그 자체로 권력 시스템으로 작동한다. 이러한 상호 인정의 폐쇄적 구조는 구성원들이 외부의 진실, 즉 시스템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예수와 같은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이러한 중독의 순환이 가져오는 궁극적인 결과는 비극적이다. 진정한 삶의 경험 그 자체보다, 온라인상에서 타인에게 어떻게 ‘보여주는가’가 더 중요해진다. 삶의 본질은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이 과정은 우리의 내면을 마비시켜,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무엇이 실재이고 허상인지를 분별하는 능력, 즉 ‘삶의 사실에 대한 인식 능력을 마비시키는’ 심각한 결과로 이어진다.
5. 결론: 실존적 자유를 향한 길
지금까지 우리는 라캉과 지라르의 이론을 통해 현대인이 겪는 실존적 위기의 본질을 탐색했다. 인간의 욕망이 타인의 욕망을 모방하는 구조를 가졌다는 사실, 이로 인해 타인의 인정에 의존하는 삶이 ‘실존의 죽음’과 공허로 이어진다는 점, 그리고 소셜 미디어 시대에 이러한 현상이 정교한 ‘중독 매커니즘’을 통해 극적으로 증폭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 모든 논의는 하나의 명확한 결론으로 수렴한다.
타인의 인정을 얻기 위해 사는 삶은 본질적으로 불행할 수밖에 없다. 타인의 시선이라는 외부의 변덕스러운 기준에 나의 존재를 저당 잡히는 한, 우리는 결코 실존적 자유와 평안에 이를 수 없다. 소스 텍스트가 제시하는 **‘참다운 삶’**의 비전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심오한 대안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욕망의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다. 수평적으로 타인의 평가를 구하는 대신, 변치 않는 절대적 기준, 즉 내면의 고유한 가치나 ‘하나님의 영광’으로 욕망의 준거점을 수직적으로 옮기는 것이다.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에 맞춰 살도록 압박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근본적인 선택에 직면한다. 타인에게서 빌려온, 위태롭고 파편적인 거짓 실존을 지속할 것인가, 아니면 외부의 평가로부터 자유로운, 자기-충족적인 본래의 실존을 회복할 것인가. 이 실존적 결단이야말로 파편화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이다. 진정한 자유는 타인의 인정이 아닌, 삶의 사실을 직시하고 그 위에 굳건히 서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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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삶: 라캉과 지라르의 시선으로 본 현대인의 실존
1. 서론: 타인의 시선에 갇힌 현대인의 자화상
현대 사회는 전례 없는 연결의 시대라는 약속과 그 이면의 실존적 고립이라는 배반 위에 서 있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실시간으로 타인의 삶을 관망하고 나의 일상을 전시하지만, 이 과잉 연결의 네트워크 속에서 개인의 공허는 역설적으로 깊어만 간다. 화면 속 타인의 편집된 행복과 나의 현실을 비교하며 느끼는 박탈감, ‘좋아요’라는 숫자에 따라 요동치는 자존감은 이제 우리 시대의 보편적인 고통이 되었다.
이러한 현상의 근저에는 인간의 실존을 뒤흔드는 근원적 문제가 자리한다. 라캉의 도발적인 주장처럼, 우리의 욕망은 순수한 내면의 발현이 아니라 타인의 욕망을 모방하고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는 구조 속에 있다는 것이다. 타인의 시선을 내면화하여 삶의 준거로 삼을 때, 개인은 주체성을 상실하고 끝없는 불안의 궤도에 갇힌다. 본 에세이가 주목하는 현대인의 실존적 위기는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본고는 이 문제를 해부하기 위해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Jacques Lacan)과 문화인류학자 르네 지라르(René Girard)의 이론을 핵심적인 분석 틀로 삼고자 한다. 라캉의 ‘타자의 욕망’ 개념과 지라르의 ‘모방 이론’을 통해 인간 욕망의 구조를 파헤치고, 타인의 인정에 기생하는 삶이 어떻게 ‘실존의 죽음’으로 귀결되는지 논증할 것이다. 나아가 소셜 미디어가 이 욕망의 메커니즘을 어떻게 증폭시키는지 분석하며, 이 굴레를 넘어 진정한 실존적 자유를 향한 길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2. 인간 욕망의 본질: '타자의 욕망'과 '모방 이론'
현대인의 실존적 딜레마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동력인 인간 욕망의 근원적 구조를 해체해야 한다. 우리는 흔히 자신의 욕망이 순수하게 내면에서 우러나온다고 믿지만, 라캉과 지라르의 사상은 이러한 통념에 근본적인 균열을 일으킨다. 그들의 이론은 우리가 무엇을, 그리고 왜 욕망하는지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드러냄으로써, 타인의 시선에 갇힌 우리 자신을 성찰하게 만드는 강력한 지적 도구가 된다.
라캉의 도발적인 명제, **“인간의 욕망은 타자(他者)의 욕망이다”**는 이 논의의 핵심을 관통한다. 여기서 ‘타자’는 단순히 다른 개인이 아니라, 개인보다 앞서 존재하는 언어, 문화, 사회 규범의 총체인 **‘대타자(the big Other)’**를 의미한다. 우리의 욕망은 이 거대한 상징적 질서가 이미 가치 있다고 규정한 대상을 향하도록 구조화된다. 결국 우리는 타인의 인정을 욕망하고, 사회가 제시하는 성공의 기준을 욕망하며, 그것을 마치 자신의 고유한 욕망인 양 착각하며 살아간다. 내가 욕망하는 것은 ‘나’의 것이 아니라, 대타자가 욕망하라고 명령한 것일 뿐이다.
인간의 욕망 대부분은 순수한 자기 자신의 욕망이 아니라, 타인의 욕망을 모방한 욕망입니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 남이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느냐, 남의 시선을 욕망합니다.
르네 지라르 역시 **‘모방 이론(Mimetic Theory)’**을 통해 욕망의 관계적 본질을 해부한다. 지라르에 따르면 욕망은 주체(나)와 대상 사이에 직접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제3의 모델(매개자)을 거치는 삼각형의 구조를 띤다. 내가 선망하는 모델이 특정 대상을 욕망할 때, 나 또한 그 대상을 욕망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모델이 욕망의 길잡이인 동시에, 동일한 대상을 두고 경쟁하는 **경쟁자(rival)**가 된다는 점이다. 소스 텍스트는 지라르의 관점을 빌려 요한복음 5장 44절을 예리하게 재해석한다. “너희는 서로의 욕망을 욕망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욕망, 즉 하나님의 의지와 현실을 욕망할 수 없다.” 이는 수평적인 상호 모방과 경쟁에 갇혀, 수직적인 진실을 바라볼 능력을 상실한 인간 조건에 대한 통렬한 지적이다.
이처럼 라캉과 지라르의 분석은 우리의 욕망이 결코 자율적이거나 순수하지 않음을 폭로한다. 우리는 타인의 욕망이라는 거울을 통해서만 자신을 욕망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렇다면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이 필연적 구조는 개인의 자아와 실존에 어떤 심오하고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는가?
3. 인정 욕구의 대가: '실존의 죽음'과 거짓된 삶
외부의 인정을 추구하는 행위는 단순한 사회적 행동을 넘어, 개인의 내면을 잠식하는 심각한 실존적 문제입니다. 타인의 기준에 맞춰 자신의 삶을 재단하는 순간, 우리는 자신의 고유한 존재 가치를 스스로 포기하게 됩니다. 이 장에서는 타인의 시선이라는 불안정한 토대 위에 세워진 삶이 어떻게 개인을 내면적 파괴로 이끄는지 해부하고자 합니다.
타인의 시선에 대한 의존은 개인을 **‘빈 껍데기(a hollow shell)’**로 전락시키고, 종국에는 **‘실존의 죽음(existential death)’**으로 귀결된다. 나의 존재 이유와 가치를 타인의 변덕스러운 평가에 저당 잡힌 삶은, 숨은 쉬고 있으나 진정으로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타인의 인정이 있을 때 잠시 존재감을 느끼지만, 그 시선이 거두어지면 나의 존재 또한 함께 소멸한다. 이러한 ‘빌려온 실존’은 스스로의 가치에 뿌리내린 진정한 존재와 날카롭게 대비된다. 소스 텍스트는 출애굽기 3장 14절을 인용하며 이 문제를 심오한 형이상학적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나의 존재가 타인의 시선과 상관없을 때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게 하나님의 성질입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신적 속성은, 타인의 평가와 무관하게 자기-충족적으로 존재하는 것의 궁극적 모델을 제시한다.
만약 나라는 존재가 타인의 시선에 따라 규정하는 것이라면, 그 존재는 애초에 존재할 이유가 없는 겁니다. 실존實存이 사라진 거짓의 존재, 빈 껍데기일 뿐입니다.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는 죽은 존재입니다.
결국 타인의 시선이라는 일시적이고 변덕스러운 기반 위에 자아를 구축하려는 시도는 본질적으로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타인의 평가는 언제나 제한적이며, 나의 실존을 온전히 담아내거나 지켜주지 못한다. 그것은 마치 사막의 **‘신기루(a mirage)’**처럼 손에 잡힐 듯 보이지만 결코 도달할 수 없는 허상과 같다. 이러한 허상을 좇는 삶은 필연적으로 **‘거짓의 삶(a life of falsehood)’**이 된다. 삶의 주도권을 타인에게 내어준 채, 남이 알아주는 것에만 의존하는 삶은 나의 실제와는 무관한 거짓된 연극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 인정 욕구가 이토록 파괴적이라면, 현대 사회의 기술은 이 욕구를 어떻게 전례 없는 수준으로 증폭시키고 있는 것인가?
4. 현대적 증폭: 소셜 미디어와 인정 중독 매커니즘
소셜 미디어는 라캉과 지라르가 분석한 인간 욕망의 이론이 실시간으로 펼쳐지는 거대한 실험장이다. 이 디지털 플랫폼은 인간의 근원적인 인정 욕구를 정교하게 활용하고, 이를 전례 없는 수준으로 강화하며, 결국 우리를 보이지 않는 중독의 굴레에 가둔다. 이 공간에서 타인의 시선은 더 이상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좋아요’와 ‘팔로워’라는 구체적인 숫자로 계량화되어 개인의 행동을 지배한다. 소스 텍스트는 이 중독 매커니즘이 강력하게 작동하는 심리적 이유를 세 가지로 분석한다.
첫째, 인정은 정체성 형성의 ‘즉효 약’ 역할을 한다. 본질적으로 관계적 존재인 인간은 홀로 있을 때 실존적 불안을 느낀다. 이때 타인의 즉각적인 인정과 관심은 이 불안을 잠재우는 가장 빠르고 손쉬운 해결책처럼 보인다.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을 내면에서부터 구축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건너뛰고, 외부의 긍정적 반응을 통해 손쉽게 나를 확인하려는 유혹에 빠진다.
둘째, 디지털 플랫폼은 즉각적 보상을 통한 중독을 설계한다. 타인으로부터 ‘좋아요’나 칭찬과 같은 긍정적 반응을 얻을 때, 우리의 뇌는 도파민과 옥시토신 같은 쾌락 호르몬을 분비한다. 이러한 즉각적이고 가시적인 보상은, 눈에 보이지 않고 더디게 나타나며 해석을 요구하는 진리나 내면의 가치보다 훨씬 강력한 유인으로 작용한다. ‘위험한 절벽에서 사진을 찍는’ 극단적 행위는, 이 즉각적 보상을 얻기 위해 삶의 실제적 가치마저 내던지는 중독의 비극적 단면을 보여준다.
셋째, 이 인정 욕구는 사회적, 종교적 권력 구조와 결합하며 더욱 공고해진다. 공동체 내에서 서로 칭찬하고 권위를 인정해주는 시스템, 즉 **‘종교적 인정 욕구’**는 그 자체로 권력 시스템으로 작동한다. 이러한 상호 인정의 폐쇄적 구조는 구성원들이 외부의 진실, 즉 시스템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예수와 같은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이러한 중독의 순환이 가져오는 궁극적인 결과는 비극적이다. 진정한 삶의 경험 그 자체보다, 온라인상에서 타인에게 어떻게 ‘보여주는가’가 더 중요해진다. 삶의 본질은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이 과정은 우리의 내면을 마비시켜,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무엇이 실재이고 허상인지를 분별하는 능력, 즉 ‘삶의 사실에 대한 인식 능력을 마비시키는’ 심각한 결과로 이어진다.
5. 결론: 실존적 자유를 향한 길
지금까지 우리는 라캉과 지라르의 이론을 통해 현대인이 겪는 실존적 위기의 본질을 탐색했다. 인간의 욕망이 타인의 욕망을 모방하는 구조를 가졌다는 사실, 이로 인해 타인의 인정에 의존하는 삶이 ‘실존의 죽음’과 공허로 이어진다는 점, 그리고 소셜 미디어 시대에 이러한 현상이 정교한 ‘중독 매커니즘’을 통해 극적으로 증폭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 모든 논의는 하나의 명확한 결론으로 수렴한다.
타인의 인정을 얻기 위해 사는 삶은 본질적으로 불행할 수밖에 없다. 타인의 시선이라는 외부의 변덕스러운 기준에 나의 존재를 저당 잡히는 한, 우리는 결코 실존적 자유와 평안에 이를 수 없다. 소스 텍스트가 제시하는 **‘참다운 삶’**의 비전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심오한 대안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욕망의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다. 수평적으로 타인의 평가를 구하는 대신, 변치 않는 절대적 기준, 즉 내면의 고유한 가치나 ‘하나님의 영광’으로 욕망의 준거점을 수직적으로 옮기는 것이다.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에 맞춰 살도록 압박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근본적인 선택에 직면한다. 타인에게서 빌려온, 위태롭고 파편적인 거짓 실존을 지속할 것인가, 아니면 외부의 평가로부터 자유로운, 자기-충족적인 본래의 실존을 회복할 것인가. 이 실존적 결단이야말로 파편화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이다. 진정한 자유는 타인의 인정이 아닌, 삶의 사실을 직시하고 그 위에 굳건히 서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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